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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봉과 K-POP 노래가 저항의 상징으로…탄핵 시위 현장의 '민중가요 혁명'

응원봉과 K-POP 노래가 저항의 상징으로…탄핵 시위 현장의 '민중가요 혁명'

12월 3일 이태원 계엄령 선포와 해제 이후 국민들이 거리와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12월 1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투표를 앞두고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는 약 100만 명이 모여 책임 있는 정치를 요구했다. 이 광장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촛불을 대신한 응원봉의 등장이었다. 비장함 대신 '흥'을 무기로 거리로 내려온 K-POP은 투쟁 현장을 축제 같은 공간으로 변모시켰다.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이하 '다만세')가 탄핵안 가결 순간 울려 퍼졌고, 다양한 정체성을 나타내는 깃발들이 흔들리는 가운데 세대를 초월한 참여자들이 함께 노래했다. 기존 민중가요의 대명사인 '임을 위한 행진곡'과 K-POP의 교차는 한국 광장정치의 새로운 전환점을 알렸다. 시위 현장에 K-POP이 등장한 배경에는 여성 세대의 역할 변화가 있다. 20·30대 여성들이 응원봉을 들고 시위 현장을 밝혔으며, K-POP 팬덤의 조직력 있는 참여 문화가 새로운 형태의 저항을 만들어냈다. 팬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화장실 위치, 안전한 대량 집회 참여법, 응원의 메시지를 나누며 효율적이고 포용적인 집회 환경을 조성했다. 이는 K-POP 팬들이 평소 전개하던 스트리밍 캠페인, 상품 보이콧, 아이돌 학대 반대 캠페인과 같은 조직화된 비계층적 연대 문화의 연장이었다. K-POP이 '민중가요'로 호명되기까지는 오랜 맥락이 있다. 2016년 이화여대 시위 현장에서 경찰과 대치하던 학생들이 '무서워서 다 아는 노래를 함께 부르기' 시작하며 '다만세'는 저항과 탐색의 의미로 재발견됐다. 이는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지는 도화선이 되었고, 이 노래는 민중가요로 호명되었다. 2022년 SPC 노조 탄압에 항의하는 제빵기사의 50여일간 단식농성 당시도 K-POP은 광장에 울려 퍼졌다. 여기서 K-POP은 단순한 음악을 넘어 노동 착취 문제와 일상을 빼앗긴 자들의 투쟁을 연결하는 매개가 됐다. K-POP이 민중가요로 전유되는 이유는 아이돌 산업의 노동 착취 구조를 마주한 팬들이 자신의 투쟁을 연결고리 삼아 세상과 연결되는 정치적 주체로 재탄생되기 때문이다. 국제적으로도 K-POP의 저항 문화는 확산되고 있다. 미국의 K-POP 팬 커뮤니티는 2020년 Black Lives Matter 운동에 온라인 기부 캠페인과 해시태그 운동으로 참여했으며, 2021년 칠레에서는 K-POP 팬 연합이 진보 대선후보 가브리엘 보릭 지지 캠페인을 조직해 결국 그의 당선으로 이어졌다. LGBTQ+ 커뮤니티들도 K-POP과 팬덤을 안전한 공간으로 여기며 활용해왔다. 한국 광장정치는 1970~1980년대 민주화운동 속 민중가요로부터 '저항 정신'을 계승해왔다. 하지만 1990년대 학생운동 쇠락과 노동운동 탄압으로 민중가요는 축소되었다. 이번 탄핵 시위에서 K-POP이 새로운 민중가요로 등장한 것은 '저항의 형식'이 음악이라는 대중적 매개와 만나 진화했음을 의미한다. 음악은 창작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그 자체로 정치성을 지니며, 수용자는 이를 재구성할 수 있다는 예술의 본질이 작동했다. 이번 광장에서 K-POP은 단순한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세대를 연결하고, 다양한 정체성을 포용하며, 침묵하던 이들을 정치적 주체로 만드는 새로운 '민중가요'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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