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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조화환 시위의 시대, 정교해진 팬덤이 K-팝 기획사를 압박하다

근조화환 시위의 시대, 정교해진 팬덤이 K-팝 기획사를 압박하다

"요즘 기획사 앞이 초상집이다." 엔터테인먼트업계 한 관계자의 말이다. 기획사 사무실 앞에서 벌어지는 근조화환 시위 때문이다. 팬들 사이에서 자신들이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말이 도는 순간, 어김없이 국화꽃이 당도한다. 화환 배송·수거와 집회 신고까지 대행해주는 업체가 있을 정도다. 한 대형 기획사 관계자는 "출근할 때 늘어선 근조화환을 보면 마음이 무겁다. 신경을 안 쓸 수가 없다"고 말했다. SM엔터테인먼트는 신인 그룹 라이즈 멤버 논란으로 골머리를 앓았다. 지난해 사생활 관련 사진이 SNS에 유포되면서 논란이 일자 무기한 활동 정지에 들어갔던 이 멤버는 10월 복귀가 발표되자 팬들의 강한 반발에 직면했다. 라이즈 팬들은 '절대 불가'를 외치며 근조화환 시위에 들어갔고, 결국 SM은 그의 복귀를 철회했다. K-팝 기획사들의 지나친 상술이 팬들을 울리는 한편, 거꾸로 기획사에 대응하는 팬들의 집단행동이나 시위가 점점 더 정교해지고 강도도 세지고 있다. 최근엔 정책 변화를 이끌어내고 직접 고발에 나서는 등 그 양상이 과거 '단순 항의' 차원을 넘어섰다. 뉴진스와 소속 기획사 어도어의 분쟁에서 팬들은 하이브에 대한 고용노동부 으뜸기업 지정 철회를 요청하는 국회 청원을 열흘 만에 5만명 동의를 받으며 성사시켰다. 이 안건은 현재 국회 소관 위원회에서 본회의 상정 여부를 심사 중이다. 하이브 아이돌 문건 조사를 요청하는 국민청원도 5만명을 채웠으며, 팬들은 지난 10월 서울 용산경찰서에 경영진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하기도 했다. 팬들 움직임의 차원이 달라진 이유는 SNS 등 팬들이 뭉치고 목소리를 전파할 수 있는 경로가 다양해진 것으로 지목된다. 과거에는 팬클럽 내에서만 논란이 일고 마는 '찻잔 속 태풍'에 그쳤다면, 이제는 세력을 규합하고 대처 전략을 짤 수 있는 경로가 다양해졌다. 또 다른 대형 기획사 관계자는 "팬들의 항의는 과거부터 있었지만, 최근에는 팬들이 결집할 수 있는 통로가 다양해지면서 팬덤의 규모가 급속도로 커지고 구성원도 다양해졌다"며 "팬덤 안에 있는 법률·회계 등 전문직 종사자들이 가세해 단순 항의 차원을 넘어서고 있다. 기획사로선 큰 부담이다"라고 털어놨다. 한국 음악산업 매출은 지난해 12조원을 넘었다. 5년 전인 2018년 6조원에 견줘 두배가 넘는 성장을 한 셈이다. 짧은 기간에 돈이 몰리면서 온갖 부작용이 나오고 있다. 비춰의 미국인 멤버 케이지는 지난 8월 "특정 스태프들에게 학대를 당했다"고 주장하며 그룹 탈퇴를 선언하고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강도 높은 업무와 사생활에 대한 극심한 제약에도 불구하고 급여는 거의 받지 못한 채 막대한 부채를 쌓아왔다"며 "이는 K-팝 산업에 깊이 자리 잡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뉴진스 사태에서도 아이돌 인권 문제가 드러났다.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하이브 아이돌 문건'에는 아이돌 멤버들을 대상으로 "못생겼음" "누구도 아이돌의 이목구비 아님" "좀 놀랍게도 아무도 안 예쁨" 등 원색적 표현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문서에 미성년자인 아이돌 멤버가 포함돼 있어 따가운 질책을 받았다. 뉴진스 멤버 민지는 어도어와의 전속계약 해지 기자회견에서 "서로에 대한 존중이 부족해서 생긴 문제"라고 지적했고, 멤버 하니는 직장 내 따돌림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하이브는 공식 사과하고 해당 문건 작성을 중지하겠다고 밝혔으며, 문건 작성자인 강명석 '위버스 매거진' 편집장을 직책 해제했다. 그룹 틴탑의 전 멤버 방민수는 지난 9월 국회 토론회에서 "데뷔를 한 시점부터 아이돌은 일, 연애, 외모, SNS 게시물 등 그 어떠한 사소한 것까지 구설에 오르지 않도록 통제받고 억압받는다"고 말했다. 팬덤의 정당한 항의는 K-팝 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필요하지만, 강력한 팬덤을 무기로 도를 넘어서는 간섭을 하는 경우는 문제로 지적된다. 노래나 뮤직비디오가 발표되면 그룹 멤버들의 분량을 체크해 자신이 좋아하는 멤버의 분량이 적다며 압력을 행사하는 사례까지 있다. 한 기획사 관계자는 "팬들이 음악적 색채나 멤버 구성까지 영향력을 끼치려는 것은 과하다. 기획사 스스로 중심을 잘 잡아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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