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을 밝힌 K팝 응원봉, 정치와 대중문화의 경계를 허물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집회 현장에서 형형색색으로 밝혀진 K팝 응원봉들은 단순한 콘서트 도구를 넘어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새로운 시위 상징으로 부상했다. 팬덤 문화가 정치 운동과 결합하면서 정치와 대중문화의 경계를 허물고 있는 현상이 주목받고 있다. 집회 현장에서 나타난 응원봉과 관련 물품의 인기는 e-커머스에서도 확인됐다. 쿠팡 등에서는 일부 LED 응원봉이 품절되기도 했으며, 중고나라와 번개장터 등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도 응원봉 판매 게시글이 쏟아지며 구매 열기가 나타났다. 콘서트장에서 쓰이던 LED 촛불 역시 이커머스 검색어 상위에 올랐다. K팝 팬덤의 정치 참여는 물질적 소비를 넘어 문화적 실천으로 확장되었다. 집회 현장에서 나타난 '선결제 문화'는 아이돌 콘서트나 팬미팅에서 발전한 팬들 간 나눔의 문화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또한 K팝 음악은 집회 참가자들을 하나로 묶는 도구로 활용되었으며, 소위 '탄핵 플레이리스트'는 기존의 민중가요 역할을 대신하며 세대 간의 소통을 가능하게 했다.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는 2016년 이화여대 학내 시위와 2020년 태국 반정부 시위에서 사용되며 시위의 상징적 음악으로 자리 잡은 바 있다. 정치 굿즈도 유권자의 정체성 강화와 유대 형성의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과거에는 팬클럽이 정치인을 중심으로 한 굿즈 제작을 주도했으나, 최근에는 정당이나 정부가 직접 정치 굿즈를 출시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조국혁신당은 당 로고가 새겨진 양말과 조국 전 대표의 사진 엽서 등으로 구성된 '신년맞이 굿즈' 세트 2종을 출시했고, 하루 만에 완판되는 등 높은 인기를 보였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지난해 8월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전국당원대회에서 DJ 티셔츠, 포토카드, 에코백 등을 판매했으며, 이를 구매하기 위한 당원들의 오픈런 행렬이 이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의 손목시계는 한때 높은 거래가를 형성했으나,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가격이 급락하는 사례도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조앤 조 웨슬리언대학 동아시아학 교수는 윤 대통령 탄핵 집회를 두고 "주목할 만하고 고무적"이라며 "젊은 층이 정치에 무관심하고 참여하지 않는다는 기존의 편견을 깨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편 K팝 팬덤의 정치적 주체성은 오늘날의 새로운 현상만은 아니다. 2000년대 초반 지오디 팬덤은 열애설로 퇴출 위기에 놓인 멤버를 보호하기 위해 광고주에 공문을 보내고 트럭 시위를 전개했으며, 서태지 팬덤은 음악 저작권 개선을 위해 국회 토론회를 개최한 바 있다. 2016년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 사건과 2018년 버닝썬 게이트 사건 이후에는 팬덤들이 성범죄 연루 멤버의 탈퇴를 촉구하는 활동을 펼쳤다. 굿즈는 단순한 상품의 영역을 넘어 메시지를 전달하고 가치관과 정체성을 표현하는 강력한 도구로 자리 잡았다. 대중문화의 소비가 민주주의와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정치의 K팝화'와 'K팝의 정치화'는 정치와 대중문화의 새로운 공존 방식을 시사하는 대표적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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