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 체험 플랫폼으로 진화한 팝업스토어, 비공식 굿즈 난제 드러나

K팝 아이돌의 새 컴백 소식만큼 화제가 되는 것이 팝업스토어다. 팬덤 사이에서 아이돌의 앨범 발매 일정은 물론 팝업스토어 오픈 여부가 주요 관심사로 떠올랐다. 한때 음반과 응원봉, 포토카드 등 단순 굿즈를 판매하는 공간이던 팝업스토어가 아티스트의 세계관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핵심 플랫폼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러한 성장이 만드는 그림자도 짙어지고 있다. 아이돌 초상을 무단으로 사용한 비공식 굿즈가 온·오프라인에서 급증하면서 권리 침해 문제가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SM, JYP, YG, 하이브, 스타쉽엔터테인먼트 등 국내 주요 기획사들은 아이돌 IP와 세계관을 활용한 체험형 팝업 운영에 힘을 쏟고 있다. 기획사들은 앨범 콘셉트에 맞춰 미디어아트와 인터랙티브 콘텐츠 등을 결합해 몰입형 쇼룸 형태로 팝업스토어를 꾸민다. 이를 체험한 팬들은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사진 등을 공유하며 또 다른 온라인 콘텐츠를 생산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
팬들의 수요도 크게 변했다. 팬들은 더 이상 단순한 앨범 구매에 그치지 않고 아티스트의 세계관과 감정을 직접 체험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아티스트를 응원하는 행위 자체를 자신의 정체성 일부로 느끼고, 팝업스토어에서 구매한 굿즈를 단순한 소장품이 아니라 팬덤 안에서 경험을 증명하는 상징처럼 여기게 된 것이다. 가요계 한 관계자는 "팝업스토어는 음악과 비주얼, 공간 연출, SNS 인증 문화가 결합된 오프라인 콘텐츠 플랫폼에 가깝다"며 "팬들은 이 공간 안에서 단순 구매자가 아니라 컴백 이벤트에 직접 참여하는 경험을 얻는다"고 설명했다.

팝업스토어를 경험하기 위해 한국을 찾는 외국인 방문객이 늘어나며 주변 상권까지 활기를 띠고 있다. 성수, 용산, 여의도 일대 등 최근 '팝업 성지'로 통하는 지역에서 팝업스토어를 방문한 이들은 인근 카페와 식당, 쇼핑몰에서 추가 소비를 이어간다. 대형 기획사뿐 아니라 중견 기획사까지 팝업스토어 운영에 관심을 가지는 분위기다. 인기 아이돌뿐 아니라 신인 그룹, 솔로 가수는 물론 버추얼 아이돌 그룹까지 팝업스토어를 오픈하는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대중문화평론가 박송아는 "팬들이 현장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감정과 기억에 더 큰 가치를 두기 시작하면서 팝업스토어는 K-팝 산업의 지형을 바꾸는 중요한 장치가 되고 있다"며 "팝업스토어가 팬덤 경험과 온라인 화제성을 동시에 만들어내는 컴백 마케팅의 핵심 플랫폼이 된 셈"이라고 설명했다.

팝업스토어의 성공이 만드는 부작용이 있다. 아이돌의 얼굴과 이름을 무단으로 활용한 비공식 굿즈가 공식 상품보다 싼 가격을 앞세워 온·오프라인에서 판매되고 있기 때문이다. 팬덤 안에서 굿즈를 직접 만들어 소량으로 판매하거나 나누는 문화는 오래 있었지만, 최근에는 수익을 목적으로 한 대량 제작·판매가 급증하고 있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와 쿠팡 등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비공식 굿즈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종류도 다양하다. 포토카드와 키링, 스티커뿐 아니라 아이돌 로고가 들어간 달력 등도 판매 중이다. 오프라인에서도 비공식 굿즈 판매가 이어지고 있다. 서울 명동 지하상가 매장에서는 아이돌 사진으로 만든 포토카드와 키링, 달력이 대부분 1만 원 이하에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비공식 굿즈가 문제되는 핵심은 퍼블리시티권 침해다. 퍼블리시티권은 유명인의 이름, 얼굴, 예명 등 인격적 요소가 가진 경제적 가치를 통제할 수 있는 권리인데, 비공식 굿즈는 권리자의 허락 없이 제작된다. 아티스트의 유명세와 시장 가치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행위인 것이다. 저작권과 상표권 문제도 뒤따른다. 공식 사진이나 앨범 이미지를 그대로 사용해 굿즈를 만들면 저작권 침해가 발생하고, 그룹 로고나 공식 상표를 사용하면 상표권 문제가 된다.

소비자 피해도 크다. 공식 상품보다 싼 가격은 구매력이 낮은 학생 팬에게 매력적인 선택지가 된다. 팬덤 문화를 잘 모르는 보호자가 자녀 선물용으로 비공식 굿즈를 구매하면서 소비자 혼동이 발생하기도 한다.
외국인 관광객도 같은 문제에 노출된다. 명동 같은 관광 상권에서 아이돌 사진과 그룹명이 붙은 상품은 K팝 기념품처럼 소비될 수 있다. 멕시코에서 온 관광객 바네사 씨는 "간판에 K팝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어 공식 제품을 취급하는 줄 알았다"며 "미리 알았다면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품질과 출처가 불분명한 비공식 굿즈가 공식 상품처럼 소비될 경우 K팝 시장의 신뢰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상업적으로 판매되는 비공식 굿즈에 대한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지식재산처는 지난 3월 아이돌 그룹 멤버들의 명칭과 초상을 무단 사용한 굿즈 제작·판매 업체 4곳에 부정경쟁방지법을 적용해 첫 시정명령을 내렸다. 시정명령에는 판매 중단, 보유 상품 폐기, 동일·유사 방식 판매 금지, 재발 방지 교육 이수가 포함됐다. 하이브는 지난 4월 BTS 미국 투어를 앞두고 미국 법원에 무허가 굿즈 판매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며, 2019년과 2021년 BTS 공연 때도 유사한 법적 조치를 통해 임시금지명령과 압수 명령을 받아낸 바 있다.
그러나 비공식 굿즈 급증의 배경에는 공식 굿즈를 둘러싼 팬들의 불만도 있다. 높은 가격과 짧은 판매 기간, 랜덤 구성이 반복해서 지적되는 문제다. 원하는 멤버의 상품을 얻기 어려운 구조가 이어지면서 팬들의 갈증이 비공식 굿즈로 옮겨가는 측면도 있다는 분석이다.
대중문화평론가 김헌식은 "공식 굿즈 가격이 높고 수량이 제한되거나 랜덤 방식으로 판매되면 팬 입장에서는 갈증이 생길 수밖에 없다. 팬심을 과도하게 수익화하는 구조가 비공식 굿즈 수요로 이어지는 측면도 있다"며 "K팝 산업이 팬심을 상술로만 이용하는 방식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 비공식 굿즈가 양산된 상황에 대해 엔터테인먼트 업계 또한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팝업스토어의 미래는 밝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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