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봉으로 밝혀진 광장, 소녀시대 '다시 만난 세계'가 된 탄핵 시위

12월 1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자, 여의도 국회 앞 광장에서 가장 먼저 울려퍼진 노래는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였다. 비상 계엄 선포 이후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광장에 모인 시민들, 특히 2030 여성층의 목소리가 유독 크고 높았던 이곳에서 '즉각 탄핵', '즉각 체포' 등의 정치적 구호는 K-팝 문화와 록 페스티벌 깃발 문화와 결합했다. 2016년 박근혜 탄핵 촛불 집회와 달리 이번 광장에는 촛불 대신 K-팝 아티스트의 응원봉이 그 자리를 채웠다. 행사장에서 울려퍼지는 음악도 변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외하면 투쟁을 위해 쓰인 민중가요는 눈에 띄게 줄었고,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아파트', 부석순의 '파이팅해야지', 에스파의 '위플래쉬' 등 K-팝 음악이 광장을 채웠다. 원색적 욕설이나 성희롱적 표현도 들리지 않았다. 친숙한 또래 세대의 문화가 젊은 세대를 광장으로 이끈 공신이 된 것이다. 그 중에서도 압도적인 대표성을 지닌 노래는 '다시 만난 세계'였다. 2007년 발표된 소녀시대의 데뷔곡으로, SM의 대표적 작곡가 켄지가 곡을 쓰고 작사가 김정배가 노랫말을 썼다.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떠올리게 하는 청량한 멜로디와 희망을 암시하는 가사, 그리고 데뷔 당시 모두 10대였던 아홉 멤버들의 완성도 높은 군무는 소녀시대의 존재를 K-팝 역사에 아로새겼다. 발매 당시에는 'Gee'나 '소원을 말해봐'에 비해 큰 히트를 치지는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더 거대한 위상을 갖게 된 곡이다. '다시 만난 세계'가 광장의 노래가 된 계기는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화여대 학생들이 미래라이프 단과대 설립에 반대하며 경찰과 대립하던 상황에서 두려움을 달래기 위해 익숙한 노래를 부른 것이 시작점이었다. 이후 박근혜 탄핵 집회, 전국 각지의 퀴어 축제, 심지어 2020년 태국 민주화 시위에서도 울려 퍼졌다. 노래는 아티스트만의 것이 아니다. 아티스트의 품을 떠나는 순간, 듣는 이들이 새로운 맥락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2022년 소녀시대 데뷔 15주년을 맞아 멤버들은 '다시 만난 세계'에 대한 자체 오마주 격인 노래 'FOREVER 1'을 내놓으며 팬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이번 탄핵 집회에서 원곡자인 소녀시대 멤버 유리는 광장에 선 팬들에게 김밥을 후원하며 "'다만세'를 잘 불러보라"고 응원을 보냈다. 17년 전 '다만세'를 듣던 팬들이 만든 새로운 맥락이 아티스트에게 전해지고, 아티스트가 화답하는 그림이 완성된 것이다. 결집된 시민의 역량이 내란 대통령의 시간을 멈추게 했고, 승리를 맞은 시민들은 그가 군대를 풀어 멈추고자 했던 국회의사당 앞에서 반짝이는 응원봉과 떼창으로 기쁨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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