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 산업 '성장통' 아닌 '경영 부실'...멀티레이블 체계의 한계 노출

사진 티비텐 / CC BY 3.0 — Wikimedia Commons
한국 음악 산업은 지난 30년간 전 세계적 성공을 이루며 '한강의 기적'을 경험했다. 1990년대 초 개인 음악 프로듀서 중심의 소규모 운영에서 벗어나 2000년대 SM엔터테인먼트, JYP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 같은 '3대 엔터테인먼트사'가 시스템적으로 K-POP 그룹을 육성하기 시작했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의 등장, 글로벌 수출 전략 강화가 K-POP을 세계적 현상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HYBE와 어도어 간 경영권 분쟁은 이 성공의 뒤편에 숨어 있던 구조적 문제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서울과학기술대 이종임 교수는 "30년간 성공 지향적 평가 방식으로 성장한 K-POP 산업의 부작용이 나타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가장 핵심 문제는 '멀티레이블 체계'의 오작동이다. 멀티레이블이란 엔터테인먼트사가 아티스트별로 독립적인 레이블을 설립해 음반 제작과 관리를 맡기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미국 음악 산업에서 이미 자리 잡은 관행이며, 위험 분산, 다양한 음악 스타일 지원, 각 그룹 공백기 상호보완 등 여러 장점이 있다. HYBE는 2020년 상장 이후 공격적 인수합병 전략으로 멀티레이블을 확대했다. 2020년 연결기준 매출 7,963억원, 영업이익 1,455억원이었던 회사는 3년 만인 2023년 매출 2조 1,781억원, 영업이익 2,958억원으로 급상승했다. 특히 2023년 4분기는 분기 최대 실적(분기 잠정 매출액 6,086억원, 영업이익 893억원)을 기록했다. 멀티레이블 전략이 한때 90%에 달하던 방탄소년단(BTS) 매출 의존도를 낮추고, BTS 멤버들의 입대로 단체활동이 중단된 상황에서도 성장세를 유지하게 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체계가 '수직 통합(Vertical Integration)' 형태로 작동했다는 점이다. 현재 HYBE는 11개 자회사 레이블을 운영 중이다. BTS를 관리하는 빅히트, 르세라핌을 관리하는 쏘스뮤직(2019년 인수), 세븐틴의 플레디스(2020년 인수), 뉴진스의 어도어(2021년 설립), 아일릿을 관리하는 벨리프랩(2023년 지분 전량 인수) 등이다. 이 과정에서 레이블 간 과도한 경쟁 구도가 생겼다. 방시혁 의장과 모회사의 개입으로 인해 각 레이블이 창의성을 발휘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음악평론가 김영대는 "아일릿이 뉴진스를 모방했느냐가 아니라, 경쟁사에서나 취할 법한 '팔로워 전략'이 같은 모회사 산하 자회사에서 왜 벌어지느냐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구조적 문제의 근본은 창작의 자율성 부족이다. 음악평론가 정재민은 "레이블이 최종 결과물을 내기 위한 과정이 독립적이어야 하고, 모회사나 오너의 개입이 없어야 창의적이고 다채로워진다"고 말했다. 현재 K-POP 업계는 연 2~3회 컴백을 준비해야 하는 가속화된 일정으로 인해 음악가와 아티스트들에게 최대 3개월의 창작 기간만 제공한다. 이로 인해 표절 의혹이 증가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뉴욕 한국예술대학교 이동연 교수는 "K-POP 산업은 시간, 이윤 압박 속에서 증명된 성공 모델을 반복하게 되면서 음악 스펙트럼이 매우 한정적"이라고 분석했다. "음악, 안무, 비주얼 콘셉트가 증명된 공식을 따르게 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경제적 피해도 심각하다. HYBE 경영권 분쟁으로 인한 주가 하락으로 약 1조원대의 시총이 증발했으며, 국민연금도 손실을 입었다. 더욱이 이것이 처음이 아니다. HYBE는 1조원을 들여 인수한 HYBE 아메리카(전 이타카홀딩스)에서 저스틴 비버 등 핵심 IP가 떠나면서 적자를 보고 있으며, SM 인수전에서도 손해를 입었다. 이 같은 '조 단위의 헛발질'이 계속되면서 유동부채는 늘어나고 현금 흐름은 악화되고 있다. 업계는 또한 '창작 성과의 측정과 분배' 논의 부족을 지적한다. K-POP 산업은 고속성장했지만, 창작 성과에 대한 평가 체계가 미흡하다. 음악 창작물에 대한 저작권료 보상 체계는 있으나, 아이돌 그룹의 콘셉트 개발 같은 시각적·문화적 창작물에 대한 보상 기준은 명확하지 않다. 팬들과 업계 종사자들의 비판도 거세다. HYBE 소속 아티스트 팬은 "수십 장의 음반 구매로 얻은 회사 수익이 경영진의 이권 다툼에 쓰이는 상황이 허무하다"고 했으며, 아이돌 지망생은 "아티스트를 희생양 삼는 모습에 오랫동안 꿈꿔온 무대가 흔들린다"고 표현했다. BTS 팬 연합은 "HYBE가 아닌 BTS를 지지한다"는 성명을 주요 언론에 발표하고 사옥 앞에 근조화환을 설치했다. 음악평론가 임희윤은 "K-POP 산업이 칭찬만 들으며 덩치를 불렸는데, 이번 분쟁으로 건강하게 성장할 발판이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다만 이는 멀티레이블 체계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운영하는 경영 능력의 부족이 핵심임을 의미한다. 창작자의 자율성 보장, 투명한 성과 평가, 책임 있는 리더십이 K-POP 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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