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의 36년 세계화 전략…'손에 손잡고'에서 글로벌 무국경 팝까지

K-POP이 지난 36년간 세계를 무대로 성장해온 과정은 결국 '현지화 전략'의 지속적 진화 역사다. 이 여정의 시작점은 1988년 서울올림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8년 서울올림픽의 불멸의 주제곡 《손에 손잡고(Hand in Hand)》는 교포 그룹 코리아나가 부른 곡으로, 당대 미국 최고의 작곡가 중 한 명 조르조 모로더가 작곡하고 작사가 톰 위트록이 가사를 썼다. 이 두 사람은 영화 《탑건》의 주제곡 《Take My Breath Away》와 《Danger Zone》을 만든 콤비로도 유명하다. 코리아나는 원래 1960년대 미8군 무대에서 활동하던 가족 음악가들이 1970년대 말 스위스로 본거지를 옮겨 '아리랑 싱어즈'로 활동하다가 올림픽 주제곡으로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다. 《손에 손잡고》는 비공식 기록이지만 유럽과 아시아를 중심으로 천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으며, 역대 올림픽 최고의 곡 중 하나로 꼽힌다. 한국계 뮤지션이 부른 곡으로는 최초로 세계 음악 차트에서 정상에 올랐고, 담은 메시지도 평화와 화합이라는 글로벌한 주제였다. 놀랍게도 이 곡에 담긴 글로벌 지향과 포부는 오늘날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K-POP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19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한국 대중음악은 세계로 나가기 시작했다. 'H.O.T.' 'S.E.S.' '클론' 'NRG' 같은 팀들이 중화권과 일본에서 인기를 모으며 '한류'라는 개념도 등장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가왕' 조용필이 1980년대 중반 일본에 진출해 나름의 성과를 거뒀지만, 1990년대의 움직임은 본격적인 세계화의 신호였다. 2000년대 초반 일본 시장에서 보아가 거둔 역사적 성공은 이 전략의 유효성을 증명한 사례였고, 발맞춰 '가요'로 불렸던 한국 대중음악은 자연스럽게 'K-POP'으로 이름을 바꾸기 시작했다. 이 뉘앙스의 변화는 결코 우연이 아닌 의도적 선택이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본격적인 2세대 K-POP의 시대가 열리면서 현지화 전략은 산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됐다. K-POP 그룹의 현지화는 언어적 부분과 국적·민족적 부분에 집중해왔다. 태국 출신 멤버 리사의 존재감이 블랙핑크를 태국에서 국민 그룹 수준의 인지도를 확보하도록 했고, 일본인 멤버 세 명을 보유한 트와이스가 일본 시장에서 기록적인 판매고를 올린 것이 그 증거다. K-POP은 외국인과 해외교포를 활용한 전략으로 지역적 한계를 극복해냈다. 이는 뉴진스와 같은 글로벌한 미학적 취향을 가진 그룹의 탄생으로까지 이어졌다. 이 논리대로라면 K-POP의 현지화 전략은 결국 현지인 혹은 외국인들로 이루어진 K-POP 그룹의 탄생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으며, 그것이 현재 목도하고 있는 K-POP의 마지막 발전 단계일 가능성이 크다. SM이 최근 론칭을 발표한 영국 그룹 '디어 앨리스(DEAR ALICE)'나 하이브의 북미 걸그룹 '캣츠아이(KATSEYE)'는 대중음악 역사에서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는 '무국경(borderless)' 팝 음악을 향한 진화의 증거다. 한편 K-POP의 성장 속에서도 트로트는 독자적인 팬덤을 구축하며 음악 다양성을 증명하고 있다. 트로트 가수 임영웅은 음악 플랫폼 멜론에서 100억 스트림을 기록했으며, 공식 팬클럽 회원은 20만 명을 넘겼고 완매된 스타디움 투어로 국내에서 BTS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트로트는 한때 노인음악으로 폄하받았지만 전통 한국음악에 서방 재즈, 스윙, 일본의 엔카 음악 요소를 블렌딩한 장르로, 임영웅 같은 젊은 세대 아티스트들이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2020년 방송한 <미스터 트롯>에서 임영웅이 우승한 후 시청률 3분의 1을 기록하며 전국민 현상이 되었고, 그의 곡들은 한국과 해외 모두에서 광범위한 청취층을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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