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인디 음악·SM엔터테인먼트 창립 30주년…경계하며 성장한 한국 대중음악의 두 축

2025년은 한국 대중음악계에 특별한 해다. 홍대의 인디 음악 씬과 SM엔터테인먼트가 공교롭게도 창립 30주년을 동시에 맞았다. 두 개의 '30년'이 한국 음악산업의 현재를 만들어낸 핵심 축으로 평가받고 있다. 인디 음악의 30주년은 1995년 4월 홍대 앞 라이브클럽 드럭에서 열린 '커트 코베인 1주기 추모 공연'을 시작점으로 본다. 그 자리에서 특별한 호명 없이 '나만 좋아하는 음악'을 만들던 음악가들과 빠른 귀를 가진 관객들이 모여 새로운 문화적 흐름을 형성했다. 이후 그런지와 펑크 같은 대안적 음악을 좋아하던 이들이 모여 밴드와 관객이 되었고, 문화에 관심 많은 기획자와 글쓴이들도 속속 모여들었다. 1996년 5월 홍대 앞 주차장 사거리에서 열린 '스트리트 펑크 쇼'는 백주 대낮에 기타를 뜯고 함성을 지르며 자유를 외친 역사의 현장이 되었다. 반면 SM엔터테인먼트는 기존 'SM기획'에서 1995년 사명 변경과 법인 설립을 추진하며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업계에서는 체계를 갖춘 시스템 아래 처음 탄생한 아이돌 그룹 H.O.T.가 1996년 데뷔한 것을 케이팝 원년으로 보는 시각이 다수다. SM은 그 이후 케이팝의 조상님으로서 산업의 기반을 만들어냈다. 극단적으로 다른 두 신은 30년 동안 줄기차게 서로를 경계하며 성장해왔다. 엄격한 시스템 아래서 자라며 스태프부터 팬까지 수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는 아이돌과, 자유를 세상 무엇보다 큰 가치로 여기며 자신의 길을 가는 인디 음악가들의 기질은 근본적으로 달랐다. SM을 필두로 한 케이팝의 몸집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해졌고, 한국 대중음악에 '산업'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데 주역을 했다. 그러나 빠르게 거대해진 몸이 낳는 부작용은 고스란히 사회로 내려앉았다. 몸이 커질수록 함께 커지는 그늘, 체형을 유지하기 위해 바닥까지 긁어내야 하는 유한 자원, 착취와 편법 등이 야기됐다. 이러한 긴장을 위기마다 느슨하게 만든 것은 좁은 틈을 타고 흐르는 교류의 온기였다. 케이팝은 창작의 막다른 벽에 부딪힐 때마다 인디를 통해 신선하고 새로운 창작자를 수혈하며 돌파구를 찾았다. SM엔터테인먼트가 스크림 레코즈(EDM), SM클래식스(클래식·재즈), 크루셜라이즈(R&B) 등 장르 음악 레이블을 직접 운영할 정도로 그 분야에서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것도 이 교류의 증거다. 한편 체계와 효율을 중시하는 케이팝의 기본은 스스로 자생력을 갖춰 나가다가도 종종 나태해지는 독립 창작자들을 꾸준히 자극했다. 케이팝의 글로벌 확장에 따라 산업 운영 방식도 변화했다. 팬데믹으로 인해 회사들은 디지털화를 추진했고, 가상 팬사인과 팬 소통 앱 등을 도입했다. 전 세계 팬들이 케이팝 생태계를 따르기 시작했고, 더 많은 해외 팬들이 아이돌 오디션에 참가하고 있다. 이는 케이팝 기업들이 한국인이 아닌 멤버를 훈련하고 데뷔시키는 변화로도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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