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예능, 자컨으로 재편

아이돌의 예능 캐릭터는 더 이상 방송국에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공식 유튜브 채널과 자체 콘텐츠 안에서 먼저 관계성이 쌓이고, 멤버별 캐릭터가 정리되며 팬덤이 소비할 밈이 만들어진다. 방송사 예능이 아이돌의 매력을 발견하던 시대에서, 이제는 아이돌이 스스로 예능판을 만드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
최근 투어스는 자체 콘텐츠 ‘투어스’에서 ‘환승룸메’를 공개했다. 인기 연애 리얼리티 문법을 패러디한 콘텐츠로, 실제 숙소 룸메이트인 신유와 영재, 도훈과 지훈, 한진과 경민이 서로의 ‘X’가 돼 새로운 룸메이트를 찾아 나서는 콘셉트다. 연애 감정 대신 룸메이트 사이의 서운함과 미련, 질투를 가져와 웃음을 만들었다. ‘환승룸메’가 흥미로운 건 단순 패러디가 아니라는 점이다. 연애 예능의 익숙한 장치를 빌렸지만, 실제로 보여주는 것은 투어스 멤버들의 숙소 관계성이다. 누가 누구에게 서운했는지, 어떤 조합이 편한지, 멤버들이 서로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방송 예능이었다면 짧은 에피소드로 지나갈 관계가 자체 콘텐츠 안에서는 하나의 기획이 된다.
세븐틴의 자체 예능 ‘고잉 세븐틴’은 2019년부터 본격적인 예능 포맷을 도입하며 팀의 또 다른 대표 브랜드로 성장했다. 추리, 공포, 콩트, 게임, 옛날 예능 패러디 등 다양한 포맷을 소화하며 팬덤 안에서는 물론 팬이 아닌 시청자에게도 통하는 웹 예능으로 자리 잡았다. ‘고잉 세븐틴’은 지난해까지 200편 넘는 에피소드를 쌓았고, 관련 콘텐츠의 누적 조회수는 15억 뷰를 넘어섰다. 세븐틴 사례가 중요한 이유는 자체 콘텐츠가 단순한 비하인드에서 출발해 하나의 예능 IP로 커졌기 때문이다. 초창기에는 앨범 준비와 무대 뒤 모습을 보여주는 콘텐츠에 가까웠지만, 시간이 지나며 독립적인 웹 예능 문법을 갖췄다. 이제 ‘고잉 세븐틴’은 세븐틴을 모르는 사람에게도 입덕 경로가 되는 콘텐츠다. 노래보다 예능을 먼저 보고 팀에 관심을 갖는 역방향 유입이 가능해졌다.

르세라핌의 ‘LENIVERSE’ 역시 자체 콘텐츠가 팀 캐릭터를 만드는 사례다. 무대 위 강한 퍼포먼스 이미지와 별개로, 자체 예능에서는 멤버들의 허당미와 승부욕, 팀워크를 보여준다. 무대에서는 단단한 팀, 자컨에서는 웃기고 가까운 팀이라는 이중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팬들은 이 간극을 소비하고, 팀은 음악 밖에서도 친밀한 얼굴을 얻는다. 몬스타엑스의 ‘몬 먹어도 고’도 비슷하다. 강한 퍼포먼스와 남성적인 무대 이미지가 있는 팀이 자체 예능에서는 편한 먹방, 게임, 여행형 콘텐츠를 통해 생활감 있는 매력을 보여준다. 팬덤이 오래 유지되는 팀일수록 이런 자체 콘텐츠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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