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강박에 빠진 케이팝, 독창성 억압하는 산업의 민낯

HYBE의 방시혁 회장이 2023년 3월 "케이팝은 위기 상태"라고 선언한 지 1년여. 그 위기의 실체는 BTS의 모회사와 산하 자회사 ADOR 간의 갈등 속에서 생생하게 드러나고 있다. 뉴진스를 보유한 ADOR의 민희진 대표와 HYBE 간의 분쟁은 케이팝 산업이 오랫동안 외면해온 구조적 문제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케이팝 산업의 근본적인 병폐는 '숫자에 대한 강박'이다. 음반 판매량, 콘서트 관객 규모, 주가 등 정량화된 지표로만 성공을 증명하려는 산업 문화가 창의성과 예술적 독창성을 질식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숫자 중심주의가 산업의 기초를 다지지 못한 채 무분별한 확장을 초래했다고 지적한다. HYBE의 다중레이블 체계도 처음부터 문제가 아니었지만, 성급하고 무질서한 추진 방식이 결국 경영 위기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2024년 4월 25일 민희진 ADOR 대표는 모회사의 경영권 탈취 의혹에 반박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20년 동안 케이팝 산업에 종사하며 소녀시대, EXO, 샤이니 등을 연달아 성공시켰고, 뉴진스라는 신화를 만든 인물. 그런데도 산업 내에서 '위태로운' 대우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그 이유를 민희진 개인의 캐릭터 문제로만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중요한 지점은 다른 곳에 있다. 민희진은 현재 케이팝 4대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연봉 5억 원 이상을 받는 '유일한 여성 대표'다. 지난 20년간 독창성을 주창해온 남성 크리에이터들—양현석, 박진영 같은 경영자, 또는 지드래곤 같은 아이돌—은 그들의 개성이 위험 요소로 간주된 적이 없었다. 나르시시스트 남성 CEO는 '카리스마'로 평가받지만, 나르시시스트 여성 CEO는 '통제 불가능한 히스테리적 인물'로 낙인찍힌다는 심리학 연구 결과도 있다. 케이팝 팬들은 아이돌의 협업자가 창작자로서 주체성을 갖고 목소리를 낼 때 아이돌에게 '피해'가 간다고 생각한다. 민희진이 ADOR 대표가 된 후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뉴진스를 대신해 의견을 냈을 때, 세간의 평가가 급변했다. 강한 자기주장을 가진 남성은 '까다롭고 자격 있는 인물'로 인식되지만, 똑같은 자기주장을 가진 여성은 '감정적이고 이해 불가능한 인물'로 간주되는 성차별적 인식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태의 본질은 민희진이라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케이팝 산업이 '상품'으로서의 아이돌에는 익숙하지만 '예술'로서의 아이돌에는 거부감을 갖는다는 점에 있다. 산업 규모를 추구하는 데 집중해온 케이팝이 이제 문화적 독창성과 창작자의 지위를 어떻게 인정할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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