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아이돌이 인간 K-pop 그룹 능가…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역사적 성과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글로벌 스트리밍·음악 차트·미디어에서 역사적 성과를 기록하고 있다. 6월 20일 공개된 작품은 개봉 직후 전 세계 40개국에서 넷플릭스 1위에 올랐으며, 발매 4주 차까지도 글로벌 순위 1위를 유지하며 강력한 흥행력을 보여주고 있다. 극 중 남자 주인공이 속한 아이돌 그룹이 부른 노래가 미국 스포티파이 차트에서 1위를 찍었다. 이는 K-pop '그룹' 명의로는 처음 있는 일이다. 방탄소년단(BTS)의 '다이너마이트'도 3위에 그쳤던 미국 스포티파이 스트리밍 차트에서 가상의 아이돌 그룹이 정상을 달성한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가상의 아이돌 그룹이 인간 아이돌 그룹이 이루지 못한 수준까지 도달했다"며 "매우 초현실적"이라고 평가했다. OST는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에서 발매 4주차에 5위를 기록했다. 2020년대에 '빌보드 200'에서 '톱2'를 기록한 영화 OST 앨범은 '위키드', '바비', '엔칸토'가 전부다. 한 편의 애니메이션 사운드트랙이 현실의 음악 시장을 거침없이 점령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번 차트 집계 기간 이 앨범의 스트리밍 횟수는 1억953만 회로, 지난 2022년 3월 '엔칸토' OST가 기록한 1억1천467만 회 이후 OST로는 가장 많다. 국내 대표 음원 플랫폼 멜론의 '톱 100' 차트에서도 '골든'(Golden)이 1위, '소다 팝'(Soda Pop)이 2위를 각각 차지하며 실존 아이돌을 제치고 최정상을 기록 중이다. 영화의 OST 수록곡 7곡이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에 오를 정도로 관심을 받고 있다. 극 중 '사자 보이즈'의 보컬을 맡은 그룹 유키스 출신 케빈 우의 스포티파이 월간 청취자 수는 1만 명에서 2천만 명으로 폭증했다. 그는 "가상의 캐릭터를 연기하다 보니 굉장히 초현실적인 느낌"이라며 "사람들은 나를 케빈 우나 K-pop 아티스트로 알아보지 못한다"고 밝혔다.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의 K-pop 연구자 김석영 교수는 "케데헌의 성공은 팬들이 비(非)인간 아이돌과 소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며 "앞으로 모방작들을 양산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성공의 핵심은 신선한 소재와 보편적 서사의 결합이다. 가상의 3인조 K-pop 걸그룹 '헌트릭스'가 무대 밖에서 악귀를 사냥하는 영웅으로 활약하는 이야기로, 걸그룹이 일종의 '무당' 역할을 한다. K-pop과 K무속을 결합한 소재는 한국에서도 보기 드문 시도다. 글로벌 영화평론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신선도 지수 96%를 기록했으며, 이는 최근 개봉한 '오징어 게임 3'(85%)나 칸 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한 '서브스턴스'(89%)보다도 높다. 한국계 캐나다인 감독 매기 강과 한국계 작가를 부인으로 둔 크리스 아펠한스 감독이 공동 연출을 맡았으며, 한국인 작곡가와 아트 디렉터들이 참여해 디테일을 살렸다. 주인공들은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국밥을 먹고 한의원에 가며, 남산 서울타워와 낙산공원 성곽길을 배경으로 악귀를 퇴치한다. 휴지를 깔고 수저를 놓는 식당 예절도 담겼다. 음악 제작진은 더욱 철저했다. 빅뱅, 지드래곤, 블랙핑크, 2NE1 등 K-pop 스타들과 작업해 온 전설적인 프로듀서 테디 박이 소유한 더블랙레이블이 작곡을 맡았다. 제작진이 작곡가들을 위해 장면과 등장인물들의 감정, 그리고 그 이유를 자세히 담은 문서를 전달하면 작곡가들이 이를 녹인 가사와 K-pop 전개 코드가 담긴 음악을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주인공 루미의 노래를 맡은 김은재(EJAE)는 SM 연습생 출신 작곡가로, 레드벨벳의 '사이코', 에스파의 '아마겟돈' 등을 작업했다. 작품의 열풍은 대중문화를 넘어 전통문화까지 뻗쳤다. 주인공들의 메신저 역할을 하는 호랑이와 까치 캐릭터는 전통 민화 '호작도'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됐는데, 두 캐릭터를 쏙 빼닮은 국립중앙박물관 기념품은 이미 품절 대란을 일으켰다. 조선시대 왕의 권위와 태평성대를 상징하는 '일월오봉도'는 주인공 루미가 주제가를 부를 때 무대 배경을 수놓은 그림으로 등장한다. 극 중 '사자 보이즈'가 부른 상큼 발랄 댄스곡 '소다 팝' 챌린지는 원작 안무가 하성진씨부터 '투어스', '제로베이스원' 등 실제 아이돌이 참여하며 확산하고 있다. 캐릭터와 똑같은 의상과 헤어 스타일로 '케이팝 데몬 헌터스' 실사판을 연출한 챌린지도 화제가 되고 있다. 극 중 '귀마' 역 더빙을 담당한 이병헌은 "예상을 뛰어넘은 인기에 깜짝 놀랐으며, 디테일한 뉘앙스를 영어로 표현하는 것이 큰 숙제였다"고 밝혔다. 미국 현지에서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내년 아카데미상(오스카)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과 주제가 부문에서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넷플릭스 테드 서랜도스 CEO는 실적 발표 콜에서 "'골든'과 '소다 팝'은 엄청난 히트곡으로 자리 잡았고 가상 그룹이 실제 팬덤을 만들어냈다"며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이 대중문화에 강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고 평가했다. UCLA의 김석영 교수는 "이건 K-pop 기업들의 오랜 꿈"이라며 "여기엔 잠도 자지 않고 아프지도 않고 늙지도 않는 아이돌들이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K-pop 프로듀서 겸 작곡가 베니 차는 "진짜 아티스트들이 보여주는 취약성, 화학 작용, 예측 불가능성은 만들어낼 수 없다"고 인간 아티스트의 역할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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